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819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78) > -김남주 나를 보고 싶어 일부러 감옥에 오겠다는 녀석이 있다 한다 나의 어디를 보겠다는 것일까 그 엉뚱한 녀석은 판판이 지기만 했던 그날그날의 내 싸움들 남은 것은 이제 철창에서 타오르는 증오의 뼈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사랑의 무기라도 깎아보겠다는 것일까 그 무기로 내 대신 압제자의 등에 꽂혀 자유의 원수라도 갚아주겠다는 것일까 무엇을 보여줄까 오늘이라도 당장 그 엉뚱한 녀석이 부러진 날개의 새 내 앞에라도 나타난다면 없다 나에게는 자랑스럽게 보여줄 아무것도 없다 지하실의 고문 때문에 구부러진 내 엄지손가락말고는 나이 사십에 온통 하얗게 시들어버린 내 머리카락말고는 나는 나의 패배와 그 흔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2022. 5. 14.
[고3 수험생] 수능대비 일일학습(177) 서시 / 박영근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두려워 떨며 웅크리다 아주 어두운 곳으로 떨어져서 피를 흘리다 절망하는 모습과 불쌍하도록 두려워 떠는 모습과 외로워서 목이 메이도록 그리운 사람을 부르며 울먹이는 모습을,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지나간 시절이 원죄처럼 목을 짓누르는 긴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맺히도록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부딪치고 부딪쳐서 굳어진 것들을 흔들고 흔들어 마침내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흐르는 힘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일을 뉘우치는 시간들 속에서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시라고 쓰고 싶다. 2022. 5. 13.
[고3, 수험생]수능대비일일학습(176) > -김남주 콕 콕콕 콕콕콕 새 한 마리 꼭두새벽까지 자지 않고 깨어나 일어나 어둠의 한 모서리를 쫀다 콕 콕콕 콕콕콕…… 이윽고 먼데서 닭울음소리 개울음소리 들리고 불그레 동편 하늘이 열리고 해 하나 불쑥 산너머에서 개선장군처럼 솟아오른다 이렇게 오는 것일까 새 세상은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고 새 세상은 정말 새 세상은 정말 어둠을 쪼는 새의 부리에서 밝아오는 것일까 2022. 5. 12.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75) > -김남주 자유를 내리소서 자유를 내리소서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주문 외우며 기도 따위는 드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지의 자식인 나는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직립의 인간인 나는 왜냐하면 자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선냄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는 위엣놈들이 아랫것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간의 노동과 투쟁이 깎아세운 입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는 입술을 적시는 술과도 같은 것 그것은 허기진 배에서 차오르는 밥과도 같은 것 그것은 검은 눈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선남선녀가 달무리의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대지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 자유여 어떤 욕심쟁이가 있어 그대를 가로채.. 2022. 5. 11.
[고3, 수험생]수능대비일일학습(174) > -김남주 추수가 끝난 들녘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밤길을 걷는다 마른 옥수숫대 사이로 난 좁다란 밭길이 끝나고 어머니의 그림자가 논길로 꺾이는 어귀에서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논가에 쓰러져 있는 흰옷의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절 받으세요 그동안 숨어 살고 갇혀 사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허수아비는 대답이 없다 야야 거그서 뭣하냐 어서 오지 않고 저만큼에서 어머니가 재촉하신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요 어머니 가뭄의 논바닥에 물을 댄다고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이슬잠을 자다가 새벽에 제가 피똥을 싸는 배를 앓았어요 나도 알고 있어야 그해 가을 일은 그때 느그 아부지 놀래가지고 너를 업고 어성교 약방으로 달려가던 모양이 눈에 선하다야 그날 새벽에 .. 2022. 5. 10.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73) > -김남주 그동안 내 심장은 십 년 이십 년 바위 끝을 자르는 칼바람의 벼랑에서 굳어 있었다 너무 굳어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등성이를 타고 에움길 돌아 종다리 우는 보리밭의 아지랑이 속으로 가서 내 심장 춘삼월 훈풍에 녹이자 그동안 몇십 년 동안 때라도 묻은 것이 있으면 고개 넘어 불혹의 강물에 가서 씻어내리고 그러자 그러자 잠시 찬바람 이는 언덕에서 내려와 찔레꽃 하얗게 아롱지는 강물에 내 심장 깊이깊이 담그고 거기 피묻은 자국이라도 있으면 그것마저 씻어내고 내 마음의 거울 손바닥만한 하늘이라도 닦자 맑게맑게 닦아 그 자리에 무엇 하나 또렷하게 새겨넣자 이를테면 별처럼 아득한 것 절망의 끝이라든가 내가 아끼는 사람 이름 석 자 같은 것이라든가 2022. 5. 9.
[고3, 수험생]수능대비일일학습(172) > -김남주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갓거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을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은 잠.. 2022. 5. 8.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71) > -김남주 앉아서 기다리는 자여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똥누는 폼으로 새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아리랑고개에다 물찌똥 싸놓고 쉬파리 오기나 기다리는 자여 2022. 5. 7.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70) > -김남주 어떻게 보면 농부의 허벅지에 붙은 거머리 같고 어떻게 보면 황소의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 같고 어떻게 보면 피둥피둥 살찐 것이 도야지 같고 이놈!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사람 같지 않은 놈! 입에 피를 흘리며 세상에 그 탄생을 고하고 약탈과 살인방화의 전쟁으로 만방에 그 힘을 과시하고 사기 도적 협잡 등으로 인간의 머리 위에 군림한 괴물 같은 놈 흡혈귀 같은 놈! 언젠가 어느 날엔가에 농부가 깎은 꼬챙이에 찔려 황소가 차는 뒷발에 채어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사지를 쭉쭉 뻗으며 뒈져갈 놈! 2022.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