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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학습2558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14) > -김남주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치눅는 흔해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 바닷가가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낙조의 파도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모르고 농부의 자식인 내 가슴은 제방 이쪽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에서 애를 태운다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2022. 9. 27.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13) > -김남주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았습니다 이소선 여사가 그 어머니고 전태일 열사가 그 아들입니다 나는 혹사의 노역장으로 노동자를 내모는 자본의 세계에 살면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상복을 입고 불에 타 죽은 아들의 사진을 껴안고 오열하는 이 여인이 그 어머니인가 목놓아 흐느끼는 모습이 험한 세상에 자식을 빼앗기고 가파른 인생을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과 꼭 닮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여 자식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여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굴리다 굴리다 힘에 겨워 못다 굴린 삶의 무게를 그 무게를 머리에 이고 당신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그 길의 시작과 끝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길에는 끝이 있습니다 나도.. 2022. 9. 26.
[고3, 수험생]수능대비일일학습(312) > -김남주 꽃과 과일로 장식한 안주상이 들어오고 술병을 가슴에 품은 밤의 선녀들이 춤추듯 미끄러지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옷부터 벗기 시작했다 옷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벗고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의 덮개를 걷어내고 허리께로 손이 가는가 싶더니 치마가 소리도 없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들 선녀들은 최후의 은신처에서 꽃잎 모양의 삼각천을 떼어내더니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하늘 높이 내던졌다 그러자 초저녁부터 지상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선남들도 일제히 술잔을 치켜들고 부라보를 연호했다 요란스럼 초야의 의식이 끝나자 선남선녀들은 술잔과 입술을 주고받고 옛부터 내려오는 음담과 패설을 주고받고 인구에 회자하는 노래를 주고받고 하다.. 2022. 9. 25.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11) > -김남주 나를 보더니 보자마자 고선생이 남주야 남주야 다급하게 부르더니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근처 다방으로 갔다 거기 어디 구석지고 으슥한 데에 나를 앉혀놓고 은밀하게 타일렀다 너 말이야 앞으로 조심 좀 있어야겠더라 어제 말이야 우연히 저쪽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말이야 그 사람 말을 그대로 옮겨볼 것 같으면 말이야 감옥에서 나와서까지 남주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다니고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하면 우리들이 곤란하다고 그러더라 출옥하고 나서 그동안 2년 동안 나는 이런 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왔다 기원이를 만나러 검찰청에 갔다 온 시영이한테도 들었고 무슨 일로 남영동에 갔다 왔다는 수택이한테도 들었고 달포 전에는 남산 어딘가에서 들었다면서 형식이가 밤중에 전화까지 해줬다. 고선생과 헤어지고 나는 곧장 .. 2022. 9. 24.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10) > -김남주 바르게 걷는 자를 가장 빠르게 가장 쉽게 가려내기 위해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마침내 국왕은 중신회의 끝에 신통한 수를 하나 얻게 되었으니 바로 걷는 자를 색출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거꾸로 걷게 하는 법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포도청은 나라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만백성이 밀고자가 되기를 요구했다 바로 걷는 자를 보고도 모른 체하거나 제 집에 숨겨준 자가 있으면 그도 역적으로 몰아 바로 걷는 자와 함께 까막소에 넣었다 바로 걷는 자의 가족 중 관직에 있는 자는 쫓아냈고 그 자손들은 영원히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사법제도가 있었는바 판사는 검사의 사돈지간이었고 검사는 판사의 사돈지간이었다 그 무렵에 성이 어(魚)가이고 이름이 무적(無跡)이란 자가 있었다 성 그대로 .. 2022. 9. 23.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09) > -김남주 어제 나는 잠실운동장에 있었다 거대한 고무보트와도 같은 경기장에서는 남과 북이 패를 갈라 공을 차고 있었고 관람석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은 그 공의 향방을 쫓느라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공의 향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에 굶주린 도둑고양이처럼 사방팔방으로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구경꾼들 틈새에 박혀 있는 새마을 모자들 가수들의 요란한 의상과 치어걸들의 괴상한 몸짓 에이스 침대 나이키 맥스웰 커피 비제바노 프로스펙스 랜드로바 코카콜라……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흔해빠진 노래 우리의 소원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없었고 자주네 평화네 통일이네 하며 내 귀를 시끄럽게 했던 관념의 뼈다귀 같은.. 2022. 9. 22.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08) > -김남주 땅 위에 태어나서 나 하늘 높이에 이념의 깃대 하나 세우지 못한다 가난뱅이들이 부자들의 마을에 가서 고자질할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 아래 태어나서 나 땅 위에 계급의 뿌리 하나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이 가난뱅이들 마을에 와서 행패를 부릴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할 일이 없는가 이렇게도 없는가 까마득한 세월 10년 전 그날처럼 나는 이제 지하로 흐르는 물도 되지 못하고 지상에서 먹고 살 만한 동네에 살면서 이런 말 저런 글 팔고 다닌다 그것도 허가난 집회에서나 그것도 인가난 잡지에서나 내 나이 벌써 이렇게 됐는가! 2022. 9. 21.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07) > -김남주 봄이면 장다리밭에 흰나비 노랑나비 하늘하늘 날고 가을이면 섬돌에 귀뚜라미 우는 곳 어머니 나는 찾아갈 수 있어요 몸에서 이 손발에서 사슬 풀리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요 우리집 그래요 어머니 귀가 밝아 늘상 사립문 미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식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시고는 했던 어머니 사슬만 풀리면 이 몸에서 풀리기만 하면 한달음에 당도할 수 있어요 우리집 장성 갈재를 넘어 영산강을 건너고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영암이라 월출산 천왕 제일봉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찾아갈 수 있어요 조그만 들창으로 온 하늘이 다 내다뵈는 우리집 2022. 9. 20.
[고3, 수험생] 수능대비일일학습(306) > -김남주 나는 그린다 여인의 얼굴을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그 까만 눈을 내 고뇌의 무덤 그 하얀 유방과 달빛에 젖은 골짜기 그 축축한 허벅지를 눈을 감고 그린다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여인의 몸 밤의 잠자리여 입술을 기다리는 입술 팔을 기다리는 허리 가슴을 기다리는 가슴 오 귀가 멀수록 가깝게 들리는 그대 거친 숨결이여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그대가 마시는 모든 술잔에 나의 입술을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에 나의 무기를 그대가 그리는 모든 그리움에 나의 노래를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는 갈증의 샘처럼 흐르고 나는 땅속 깊이 그대를 파헤쳐 하늘 아래 별처럼 붉은 아기 하나 태어나게 하고 싶다 2022.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