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
-김남주
바르게 걷는 자를
가장 빠르게 가장 쉽게 가려내기 위해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마침내 국왕은 중신회의 끝에
신통한 수를 하나 얻게 되었으니
바로 걷는 자를 색출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거꾸로 걷게 하는 법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포도청은 나라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만백성이 밀고자가 되기를 요구했다
바로 걷는 자를 보고도 모른 체하거나
제 집에 숨겨준 자가 있으면 그도 역적으로 몰아
바로 걷는 자와 함께 까막소에 넣었다
바로 걷는 자의 가족 중 관직에 있는 자는 쫓아냈고
그 자손들은 영원히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사법제도가 있었는바
판사는 검사의 사돈지간이었고
검사는 판사의 사돈지간이었다
그 무렵에 성이 어(魚)가이고 이름이 무적(無跡)이란 자가 있었다
성 그대로 이름 그대로 그는 바르게 걷거나 거꾸러 걷거나
물고기처럼 뒤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졌으니
그는 그 재주를 믿고 할 소리 못할 소리 죄다 하고 다녔다
그 소리들 중에서 한두 개를 골라잡아 여기에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그놈이여
정가가 최가이고 최가가 이가이고 이가가 경가이고
성과 이름만 바꿔치기했단 말이여
아니 무신정권 수십 년에 날강도 아닌 놈이 있었던가
사기꾼 협잡꾼 정상모리배 아닌 놈이 있었던가
왕궁이란 게 원래 음모의 토굴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관가에 들락날락하는 놈치고 쥐새끼 아닌 놈이 없는 법이여
보라고 저 쥐새끼들의 피묻은 주둥아리를
그 주둥아리가 물고 있는 나락모가지 그것은 다름아니고
우리 백성들이 불볕에 땀흘려 키워놓은 바로 그 나락모가지나니
오 모가지여 모가지여 피묻은 나락모가지여
그 모가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왕의 모가지를 감을 밧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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