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유천지비인간 >>
-김남주
꽃과 과일로 장식한 안주상이 들어오고
술병을 가슴에 품은 밤의 선녀들이
춤추듯 미끄러지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옷부터 벗기 시작했다
옷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벗고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의 덮개를 걷어내고
허리께로 손이 가는가 싶더니
치마가 소리도 없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들 선녀들은 최후의 은신처에서
꽃잎 모양의 삼각천을 떼어내더니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하늘 높이 내던졌다
그러자 초저녁부터 지상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선남들도
일제히 술잔을 치켜들고 부라보를 연호했다
요란스럼 초야의 의식이 끝나자 선남선녀들은
술잔과 입술을 주고받고
옛부터 내려오는 음담과 패설을 주고받고
인구에 회자하는 노래를 주고받고 하다가
마지막 의식을 치르기 위해 각자 짝을 지어
밤의 보금자리로 기어들어갔다
그날 밤 나는 취하지 않았다
팔목을 보니 시계는 자정을 넘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전봇대를 껴안고 질금질금 오줌을 깔기는 사람
바닥에 주저앉아 으악으악 토악질을 하는 사람
질주하는 택시에 대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사람
사내들을 붙잡고 섹스를 흥정하는 사람
밤의 서울은 별유천지비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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