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과 북이 패를 갈라 >>
-김남주
어제 나는 잠실운동장에 있었다
거대한 고무보트와도 같은 경기장에서는
남과 북이 패를 갈라 공을 차고 있었고
관람석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은
그 공의 향방을 쫓느라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공의 향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에 굶주린 도둑고양이처럼
사방팔방으로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구경꾼들 틈새에 박혀 있는 새마을 모자들
가수들의 요란한 의상과 치어걸들의 괴상한 몸짓
에이스 침대 나이키 맥스웰 커피
비제바노 프로스펙스 랜드로바 코카콜라……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흔해빠진 노래 우리의 소원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없었고
자주네 평화네 통일이네 하며 내 귀를 시끄럽게 했던
관념의 뼈다귀 같은 말의 성찬도 보이지 않았다
여간만 실망하지 않은 나는
발길을 돌려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구경꾼들 틈에 박혀 있었던 새마을 모자들이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는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하얀 천을 펼쳐들고 뭐라고 외치는데
모자들이 떼거리로 몰려가서 그 입을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모자들은 하얀 천을 놓고
치고 받으며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중과부적
삽시간에 백 명 이백 명으로 수가 늘어난 모자들은
젊은이들의 멱살과 손목을 움켜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버렸다
아무도 거기에 개입하거나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구경하느라 엉덩이를 들고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들은
모자들이 조성한 험악한 분위기에 기가 죽었는지
슬그머니 자리에 엉덩이를 내리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사태의 처음과 끝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젊은이들이 외치다 모자에 입이 막혀 질식사했던 구호와
젊은이들이 펼치다 모자들에게 빼앗겼던 하얀 천에 씌어진 글씨는
조국은 하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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