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쇠비름
강우근
덥다.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정말 덥다. 머리가 띵, 한 게 더위를 먹은 것 같다. 가게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음료수 캔을 마셔 보지만 더위는 가시지 않고 갈증이 오히려 더하다. 가게 쓰레기통엔 빈 캔들과 아이스크림 포장비닐이 어지럽게 넘쳐난다. 여름 상품들은 더우면 더울수록 더욱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가진 자들은 더위로 떼돈을 벌고, 없이 사는 사람들은 몇 곱절 죽어나는 것이다.
여름 투쟁은 더위와도 싸워야 하니 몇 배나 힘들 수밖에 없다. 방송에서는 더위로 인한 일사병을 예방하려면 외출을 삼가고 균형 잡힌 식단을 짜야 한단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저 한 끼 때우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처방이 더 열나게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결국 맞서서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할 따름이다.
한여름 땡볕에서 더 쑥쑥 잘 자라는 풀이 있다. 쇠비름은 다른 풀들이 잎을 축축 늘어뜨리고 힘을 못 쓸 때, 그때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더 무성하게 자라난다. 쇠비름은 뿌리째 뽑아 밭 두렁에 던져 버려도 바로 말라죽지 않는다. 그러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다시 시퍼렇게 살아난다. 물기가 많은 육질 잎을 가졌기 때문이다. 쇠비름은 이렇게 질기게 살아남는 데다 짐승들도 잘 먹지 않는 풀이라고 몹쓸 잡초로 여겨왔다. 밭농사 지어 본 사람들한테 쇠비름 얘기를 꺼내면 징그럽다고 설설 고개를 저어댄다.
하지만 쇠비름은 그렇게 미움을 받을 만한 풀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먹으면 장수하는 풀로 여겨 '장명채'라 부르는데 예전부터 밭에서 재배해 왔다고 한다. 그 질긴 생명력 때문에 장수 음식이 된 것이다. 유럽에서도 채소로 길러 샐러드 따위로 즐겨 먹는다고 한다.
쇠비름은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나 뜯어서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묵나물로 만들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다. 생채로 바로 무쳐먹을 수도 있고 시고 아린 맛이 부담스러우면 데쳐서 우린 다음 무쳐먹어도 된다. 쇠비름은 푸른 잎과 붉은 줄기, 노란 꽃, 흰 뿌리, 검은 씨앗을 가지고 있어 다섯 가지 색깔, 다섯 가지 기운을 다 갖추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먹으면 몸 속에 있는 나쁜 기운을 없애고 심장을 강하게 하고 관절염이나 대장염에도 좋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 약효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풀은 좋은 음식도 되고 약도 되지만 좋은 상품이 되지는 않는다. 풀이 품질 좋은 채소를 생산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초제를 뿌려서 없애 버린다. 하지만 풀은 다시 자라난다. 제초제가 벌이는 풀과의 싸움은 결국 풀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제초제 독은 흙 속에 남고 그곳에서 자란 채소나 거기서 자라난 풀을 먹고 자란 짐승한테로 옮겨지고 다시 그 채소나 짐승을 먹는 사람한테로 쌓인다. 제초제를 뿌린 곳에서 자라난 쇠비름은 먹을 수 없다. 그것은 이제 음식도 약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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