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서 >>
-김남주
추수가 끝난 들녘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밤길을 걷는다
마른 옥수숫대 사이로 난 좁다란 밭길이 끝나고
어머니의 그림자가 논길로 꺾이는 어귀에서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논가에 쓰러져 있는 흰옷의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절 받으세요
그동안 숨어 살고 갇혀 사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허수아비는 대답이 없다
야야 거그서 뭣하냐 어서 오지 않고
저만큼에서 어머니가 재촉하신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요 어머니
가뭄의 논바닥에 물을 댄다고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이슬잠을 자다가
새벽에 제가 피똥을 싸는 배를 앓았어요
나도 알고 있어야 그해 가을 일은
그때 느그 아부지 놀래가지고 너를 업고
어성교 약방으로 달려가던 모양이 눈에 선하다야
그날 새벽에 니가 꼭 죽는 줄 알았어야
나는 다시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또랑을 건너고 솔밭 사이 황톳길로 들어선다
다 왔다 저기 저것이 느그 아부지 묏등이어야
니가 서울서 숨어 살 때 돌아가셨는디
참 불쌍한 사람이어야 일만 평생 죽자살자 하고
자식덜 덕 한번 못 보고 저승 사람 됐으니께
느그 아부지가 너를 을마나 생각했는 줄 아냐
너는 평생 돈하고는 먼 사람일 것이라면서
저 아래 징갤 논배니는 니 몫으로 띠어놓으라 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단다
산언덕바지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무덤은
일곱 마지기 우리 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놈아 니가 그러고 댕긴다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으냐
첫 감옥에서 나와 무릎 꿇고 사랑방에 앉아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하셨던 꾸중이 떠올랐다 가엾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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