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노박덩굴
강우근
숲은 철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여름 내내 힘차게 펄럭이던 잎들은 어느새 거짓말처럼 져 버렸다. 초겨울 숲에선 마른 낙엽 구르는 소리가 잠꼬대처럼 들린다.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새 소리가 화들짝 숲을 깨운다. 숲속에 알알이 밝힌 붉은 열매가 새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새들은 냄새는 잘 맡지 못해도 눈이 좋다. 새들이 좋아하는 열매는 냄새는 별로 나지 않지만 색은 아주 화려하다. 화려한 색으로는 노박덩굴 열매를 따를게 없을 것이다. 노박덩굴은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콩알보다 작은 노박덩굴 열매 노란 껍질이 세 조각으로 벌어지고 그 속에서 붉은 씨앗이 드러나면 노랗고 빨간 색이 하도 선명해서 눈 속에 밝힐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노박덩굴 열매는 새들이 특히 좋아한다. 노박덩굴엔 새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성찬을 즐긴다.
맛있는 열매를 만들고 입맛을 끄는 붉은 색으로 꾸민 노박덩굴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과육은 새들에게 삯으로 내어 주지만 씨앗은 뱃속에 실려 먼 곳까지 옮겨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박덩굴 열매는 삯으로 내주는 과육이 얼마 엇고 온통 씨앗으로 차 있다. 사람들은 씨앗만 씹히는 노박덩굴 열매는 잘 먹지 않는다. 새들의 뱃속을 통과하지 않은 씨앗은 싹 트기가 어렵다. 씨앗은 새들의 뱃속을 통과하면서 싹트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새들은 노박덩굴을 키우고 노박덩굴은 새들을 먹인다. 노박덩굴 열매는 붉은 저고리에 노란 치마를 입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열매를 말려서 여러 약으로 쓰는데 그 모양새만큼이나 여자들에게 쓰임이 많다. 생리통이나 냉증에 약효가 아주 좋단다. 열매를 살짝 볶아서 한 알씩 아침저녁으로 씹어먹으면 달거리가 다시 돌아온다 하고, 관절염이나 허리나 무릎이 아플때, 머리가 어지럽거나 아플 때, 팔다리가 굳어질 때도 좋은 효과가 있다. 노박덩굴 열매 기름은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방부 작용이 이어서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존하는 데 쓰이기도 한단다. 노박덩굴 어린잎은 나물로 잘 먹는다. 약간 쓰긴 하지만 데쳐서 찬물에 헹구면 감칠맛 나는 산나물이 된다.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노박덩굴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도 길이 보인다. 새들이 날아간 길이 보이고 숲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노박덩굴은 새들을 불러모아 숲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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