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저녁
-김소월-
퍼르스럿한 달은, 성황당의
군데군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걸리었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기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 녹아 황토 드러난 멧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 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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