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달맞이꽃
강우근
겨울이 너무 따뜻해졌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싸우는 이들에겐 여전히 너무나 추운 겨울이다. 추위를 모르는 개구쟁이들이야 눈이라도 내리면 얇은 옷만 입고도 온몸이 동태가 되도록 신나게 뛰어 놀 테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공터 구석에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겨울을 나는 풀들이 있다. 냉이나 망초와 같은 두해살이풀들이다.
이것들은 지난 해 가을 이미 싹이 터서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꽃대가 자라나 꽃대 끝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두해살이풀은 힘들게 겨울을 나야 하지만 봄이 되어서야 싹트는 풀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라는데 훨씬 유리하다.
두해살이풀이 겨울을 날 때는 뿌리에서 바로 자라 나온 잎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추위를 피하고 체온을 유지한다. 그 모습이 꼭 바닥에 깔아놓은 방석 같아서 '방석 식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추위에 빨갛게 얼어버린 아이들 볼처럼 잎사귀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데, 이런 모습이 꼭 장미꽃이 핀 것 같아서 '로제트 식물'이라고도 한다.
이런 두해살이풀 가운데서도 달맞이꽃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겨울을 난다. 그래서 달맞이꽃은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꽃을 피우는 것 같다. '겨울 꽃'이 오히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길가 어디서나 아름다운 장미꽃 모양으로 땅바닥에 붙어 겨울을 나는 달맞이꽃을 볼 수 있다.
이런 달맞이꽃이 우리 둘레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은 해방 전후쯤부터니까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달맞이꽃은 아주 멀리서 들어온 풀이다. 달맞이꽃이 처음 난 고향이 지구 정반대 편인 칠레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관상용으로 들여온 것이 길가와 들로 퍼져 나가 이제 도심 골목에서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대개 귀화 식물이 이 땅에 들어온 것도 사람들에 의해서이고 또 들어와서 자라는 곳도 개발로 망가진 땅이건만, 단지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오해와 편견을 받고 큰 차별을 당해왔다. 그나마 귀화 식물 가운데서 달맞이꽃은 꽃이 예뻐서인지 큰 푸대접은 받지 않는 것 같다.
한때 달맞이꽃 열매에서 뽑은 기름이 고혈압, 당뇨, 비만 따위에 좋다는 이야기가 퍼졌었다. 달맞이꽃과 씨앗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동물 실험을 통해 밝혀졌고, 여성이 겪는 생리통, 월경불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아름답게 자라는 달맞이꽃은 불과 반세기만에 당당히 이 땅에서 풀로 자리잡았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싸우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당당히 이 땅에서 노동자로 대우받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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