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가죽나무
강우근
겨울 추위가 길다. 코끝이 알싸해지는 추운 아침 공기 속에 직박구리 빽빽 우짖는 소리가 쨍쨍 울려 퍼진다. 목을 잔뜩 움츠리고 종종 걸음 치게 되는 동네 골목길 어귀에 가죽나무가 하늘을 떠받치기라도 하려는 듯 치솟아 자라 당당하게 겨울을 버텨내고 있다. 검은 나무껍질 때문에 가죽나무는 더욱 당차 보인다. 나무 앞에 서면 움츠렸던 가슴이 절로 펴지는 것 같다.
가죽나무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도심에서, 시골길에서 어디서나 쉽게 만나게 되는 나무다. 생명력 강한 가죽나무는 흙이 있는 곳이면 축대 틈이건 보도블록 사이에서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축대를 망가뜨릴까 봐 밑동을 베어내면 다음에 다시 그만큼 쑥 자라 올라오곤 한다. 훌쩍 다시 자라 오른 가죽나무를 보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가죽나무는 오래 전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숲 속에서는 자라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아무데서나 우직하게 잘 자란다. 그래서 더 친근한 나무가 된 것 같다. 가죽나무 중국 이름은 '나쁜 나무 저, 개똥나무 저(樗)'다. 가죽나무는 아주 오래 전부터 '몹쓸 나무, 나쁜 나무'로 홀대 당해왔다.
이 나무가 왜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달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옛 선비들이 저력지재(樗 之材)라 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빗대어 나타내는 대표적인 나무로 삼은 탓이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질로 남 다른 은혜를 입었으니 가슴 속 감명을 어찌 다하겠습니까'라는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그러나 가죽나무는 쓸모없다고 폄하한 그 선비들보다 더 쓰임새 많은 나무다.
<궁궐의 우리나무, 박상진>
가죽나무라는 이름은 '가짜 중나무'에서 유래되었다. 가죽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 가운데 참중나무가 있다. 참죽나무 잎은 절에서 나물로 먹었기 때문에 '중나무'로 불렸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은 먹지 못하는 가죽나무는 '가짜 중나무'로 불렸단다. 그렇지만 가죽나무 어린잎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다만 잎이 더 자라면 잎에 난 돌기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가죽나무는 암수딴그루인데 수나무 꽃 냄새가 좋지 않고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나무 가짜나무로 다뤄지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예전엔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는데 냄새가 좋지 않고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때문인지 많이 베어져 버렸다. 경복궁 건춘문 앞에 남아 있는 가죽나무 가로수는 가죽나무가 얼마나 멋있는 나무인지를 새삼 실감나게 한다.
가죽나무 잎은 작은 잎이 여럿 붙어나서 하나의 큰 잎을 만든다. 이 큰 잎이 지고 난 뒤 잎이 붙어 있던 자리의 흔적(엽흔)이 호랑이 눈을 닮았다. 겨울 가죽나무는 호랑이 눈을 하고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가죽나무 열매는 잘 떨어지지 않아서 겨우내 달려 있다. 봄이 되어 바짝 말라 떨어질 때면 날개가 달려 있어 꽤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가죽나무 잎과 뿌리를 삶은 물로 씻으면 옴과 피부병이 낫고, 뿌리는 설사나 치질, 하혈을 멎게 한다. 목재도 쓸모 있고 가로수로, 학교나 공장 녹음수로 심으면 좋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피하려면 암나무를 가려 심으면 된다. 이래저래 쓸모 많은 나무다.
'일일학습 > 수능일일학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10) (0) | 2022.03.07 |
---|---|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09) (3) | 2022.03.06 |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07) (0) | 2022.03.04 |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06) (0) | 2022.03.03 |
[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105) (0) | 2022.03.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