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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학습/중1일일학습

[중1]5월18일 오늘부터 일일학습(139)

by 한량이 되고싶다 2020. 5. 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은 다섯 국면으로 구분된다.

제1국면: 항쟁의 발단

제1국면은 5월 18일 학생시위에 의한 항쟁의 발단기이다.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교문 앞에서 집결한다는 사전 결의에 따라 학생들은 18일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집결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강력한 저지로 학생들은 광주역에 재집결하여 시위를 전개했다. 시위대열이 점차 불어나자 계엄군이 다시 시위진압에 나섰으며, 공수부대의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계엄군의 무력진압은 첫날의 시위를 해산시켰으나 오히려 시민·학생들의 분노를 야기시켜 시위를 항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2국면: 봉기 형태로의 발전

제2국면은 학생시위에 시민이 합세하면서 봉기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19일부터 시작되었다.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한 학생·시민들이 군경(軍警)과 공방전을 벌이면서부터 시위는 점차 격화되어갔다. 이 시기에 계엄군은 간선도로·주요시설 등을 확보하여 시위대를 포위하면서 대치했고, 이에 따라 시민들은 화염병·돌 등으로 초보적인 수준의 자위적 무장을 시작했다.

제3국면: 무장항쟁으로 발전

제3국면은 도시빈민·노동자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투쟁의 선두로 나선 20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문사·방송국·세무서·파출소 등 공공기관이 습격받았으며 특히 계엄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이 시점에서 시위대 대표와 도지사(道知事) 사이에 협상이 열렸으나 결렬되었고, 계속되는 계엄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급증했다.

제4국면: 전라남도권으로 확산

제4국면은 시위대가 시가전에 돌입하고 항쟁이 전라남도권으로 확산되면서 농민들의 참여가 시작된 21일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항쟁지도부를 구성한 시위대는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포·영암·장성·나주 등으로 진출했으며, 22일 오전의 총공세로 도청과 도경에서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광주시내를 장악했다. 제5국면은 22일부터 계엄군에 의해 광주가 다시 점령되는 27일까지의 시기이다. 광주를 장악한 시위대는 치안확보 등 자치활동을 수행했으며, 23일부터 매일 범시민궐기대회를 열어 투쟁목표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때 구성된 수습대책위원회가 광주시민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원상복구와 사태회복에만 주력함으로써 수습대책위원회와 광주시민 사이에 분열이 야기되었다. 이에 시민들은 범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수습대책위원회를 규탄하고 25일 새로운 투쟁지도부를 구성했다. 동시에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비해 시민군을 체계적으로 조직했다. 그러나 27일 새벽 0시를 기해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탱크 등으로 무장한 계엄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으로 10일간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일단락되었다.

의의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은 항쟁의 배경을 이루는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 속에서 제기된 운동의 주체·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유신체제의 대외의존적이자 성장일변도인 경제정책과 이를 위한 경직된 정치구조 속에서 누적되어온 시민의 불만이 10·26사태 이후 일련의 과정을 거쳐 증폭되어오다가 5·17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시민항쟁의 목표는 민주주의와 생존권확보로 집약되었고 특히 민주주의 문제가 중심목표로 제기되었다.

한편 이 기간에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태도, 특히 집권세력의 진압을 정당화해준 사례와 군대동원 방조는 이후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새롭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광주민주화운동은 집권세력에 대항하여 최초로 무장항쟁을 전개한 사건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이후 급격하게 고양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자 준거점이 되었다.

전두환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한 1987년의 6월항쟁 역시 근본적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이러한 원동력은 결국 제6공화국 노태우정권으로 하여금 광주청문회를 열도록 했으며 그 과정에서 1980년의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게다가 노태우정권 하에서 유보되었던 광주학살자 처벌문제는 1993년 이후 김영삼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사하면서 12·12사태와 광주학살의 주역들이 국민적 심판을 받았으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은 수감되었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 12. 21)·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7. 12. 17) 등이 제정되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그 자격을 박탈했다.

 

139기본도형(선분의 길이)(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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