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에서 >>
-김남주
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인가
옆구리에 하나씩 여자를 꿰차고
술집과 술집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저 사람들이
그동안 사십 몇년 동안 나의 자유를 지켜준 사람들인가
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인가
Try burning this one 이라고 씌어진 글씨와 그 밑에
성조기를 그린 내의를 걸친 저 사람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평화를 지켜줄 사람들인가
어젯밤 나는 동두천에 있었다
밤은 불야성을 이루고 환락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물었다 내 자신에게
1946년 성조기 아래서 태어났던 나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고 이날이때까지
자학과 광기 없이 나는 조국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던가
가위눌려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나는 내 조국의 자유를 노래할 수 있었던가
감시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체포와 구금과 투옥의 밤을 의식하지 않고
나는 내 나라의 평화를 그릴 수 있었던가
나는 죽고 싶었다 어젯밤 동두천에서
성조기 펄럭이는 식민지의 하늘 아래서
오 광기여 광기의 자식 자학이여
내가 죽어 차라리 개로 환생할 수 있다면
내 눈엣가시 주둔군의 저 철사줄이라도 물어뜯을 것을
내 증오의 깃발 성조기에 대고 울부짖기라도 할 것을
여기저기 도시에 마을에 숨어 산다는
핵병기의 비밀을 파헤쳐놓기라도 할 것을
목이 쉰 개의 비명이 내 귀에서 지고
밤이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에 나는 술에서 깨어났고
웬 여자가 토할 듯 입을 틀어막고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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