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수능대비 일일학습(300)
<< 단식 >>
-김남주
1
똑 똑 똑
벽을 세 번 두드려
ㄷ을 쓰고
찍
벽을 한 번 그어서 그 옆에
ㅏ를 붙이고
똑 똑
다시 벽을 두 번 두드려 그 밑에
ㄴ을 달면
단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벽을 두드리고 그어서
방에서 방으로 동지들에게 전한다
단식의 단자와 식자를 전하고
투쟁의 투자와 쟁자를 전한다
2
징역 초기에 우리는
단식을 밥 먹듯이 했다
가다밥의 크기가
3등에서 4등으로 작아졌다고 그랬고
가다밥에 박힌 콩알이
50개에서 마흔 몇 개로 줄었다고 그랬고
운동시간 5분을 늘리느라 그랬고
미역국에 시래기 대신 담배꽁초가 떴다고 그랬다
3
오늘 아침 우리는
단식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엄지발가락만한 돼지고기가 안 나왔기 때문이다
하루 굶고 이틀 굶고
한 고비 사흘을 넘기고
감옥에 다시 밤이 왔다
반항하는 놈은 짓이겨버려
버러지만도 못한 빨갱이새끼들
주는 밥이나 얌전히 처먹지
이런저런 토막소리 사동 입구께서 왁자지껄하고
이내 콘크리트 복도에서 내달리고 엇갈리는 군홧발 소리
앞방에서 옆방으로 철문 따는 소리
손목에 쇠고랑 채우는 소리
끌려가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도마 위에 쪼아놓은 닭발이 되어 기어왔다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며 들어왔다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돌아와서
징역보따리를 챙겨메고 사동을 떠났다
여러분과 끝까지 싸우지 못해 부끄럽다며 인사하고
물 한 모금 입에 안 넣고
일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참으면서
나는 나의 비참을 모조리 겪었다
싸우다가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죽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폭력의 중압에 허리를 굽혔고
개같은 감옥의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