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070일 수능대비 일일학습
들꽃이야기-쥐똥나무
강우근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 그 많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놀이터 둘레 쥐똥나무 생울타리 속에서 인기척에 놀란 참새들만 후루룩 날아올라 등나무 위에 앉았다. 참새들이 그 속에서 쥐똥나무 열매를 먹고 있었나? 까만 쥐똥나무 열매는 참새들이 배고플 때마다 와서 한 개씩 한 개씩 겨우내 아껴가며 따먹는 참새 밥인가? 나무 이름처럼 꼭 쥐똥을 닮은 까맣고 길쭉한 열매가 생울타리 속에 조롱조롱 많이 달려 있다. 쥐똥나무 가지에는 드문드문 푸른 잎까지 아직도 달려 있다. 쥐똥나무는 인동덩굴이나 찔레처럼 '반 낙엽성 나무'이기도 한가 보다. 추위가 심하면 잎을 다 떨어뜨리지만 어느 정도 견딜만한 추위면 푸른 잎을 몇 장 남겨 그대로 달고서 겨울을 난다. 갈수록 겨울이 포근해져 쥐똥나무 푸른 잎사귀가 더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추위 탓에 검푸른 색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싱싱하다. 그 잎사귀를 보고 있자니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치기하고 딱지치기하며 골목을 휩쓸고 다니던 옛날 아이들 시커멓게 곱은 손가락이 떠올랐다.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한테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다. 쥐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쥐똥보다 쥐똥나무 열매를 먼저 본 아이들도 재미난 이름 때문인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쥐똥나무'를 '검정알나무'라 부른다. 쥐똥나무보다 검정알나무라는 이름이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남북 식물 이름 통일 위원회라도 생기면 쥐똥나무부터 검정알나무로 바꾸어야 한다"(「궁궐의 우리나무」박상진)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검정알나무는 왠지 밋밋하게 들린다. 게다 '검정알'이라면 댕댕이덩굴이나 층층나무도 검정색 열매이고 청가시덩굴, 인동덩굴 열매도 검정색이라 쥐똥나무만이 가진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쥐똥나무는 산골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공원이나 길가에 생울타리로 많이 심으면서 이제 산보다 도시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도심 가운데서도 찻길과 사람 다니는 길을 나누는 쥐똥나무 생울타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쥐똥나무도 그대로 두면 사람 키를 훌쩍 넘겨 3미터쯤까지 자란다. 쥐똥나무는 가지가 많이 갈라져 나와 넓게 퍼지는데 그 가지마다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어서 그대로 겨울새들 낙원이 된다. 그렇지만 까탈스럽지 않고 생명력 강한 쥐똥나무는 여러 그루를 함께 생울타리로 심는 것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가지를 마구 쳐내 버린 데다 매연까지 시꺼멓게 뒤집어 써 과연 새순이 돋을까 싶은 쥐똥나무에서 깨끗한 연두색 새순이 기적처럼 돋아나는 것을 보면 쥐똥나무는 '생울타리로 쓰이기 위해 태어났다'는 어느 식물학자 말을 실감하게 된다.
쥐똥나무 생울타리는 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지 않다. 그저 허리쯤에서 가지치기가 되어서 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쥐똥나무만큼 키를 낮추면 높은 데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목을 빼고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 보니 한 치 앞이 벼랑인 것도 보지 못하는 이 한심한 세상의 뿌리가 보이고 함께 세상을 바꾸어나갈 동지들도 보인다. 키를 낮추고 둘레를 둘러보면 늦은 봄 거리에서 쥐똥나무 하얀 꽃을 볼 수 있고 짙은 쥐똥나무 꽃향기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